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아요. 다리에 힘이 풀리고, 지금 당장 쓰러질 것만 같아요. 정신도 아득하고요."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어지럼증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증상. 하지만 원인을 명확히 알거나, 제대로 진단 받기는 쉽지 않다.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환자 중 상당수는 여러 병원을 전전하면서도 딱 부러진 원인은 찾지 못한 채 세월만 보내고 있는 경우도 많다.
부산에 사는 60대 여성 홍모 씨도 그랬다. 지난 6개월 넘게 이비인후과, 신경과, 심장내과를 오가며 여러 검사를 받아봤지만 "정상"이라는 말만 들었다. 하지만 괴로운 어지럼증은 계속됐다.
그런 탓에 어지럼증은 속설도 많다. "짠 것, 많이 먹어서 그래", "나이 탓이야", "어지럼증, 그것 안 고쳐져" 등. 하지만 어지럼증, 그 이면엔 심각한 질환이 숨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문제다.
의학이 보는 어지럼증의 4가지 스펙트럼
어지럼증은 마치 '몸의 GPS'가 오작동하는 것과 같다. 귀의 전정기관, 눈, 근육, 뇌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이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방향 감각이 흐트러진다.
원인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의학계에선 증상과 원인에 따라 이렇게 분류한다. 먼저, 말초성 어지럼증. 귀의 전정기관 이상으로 생기는 '현훈'(眩暈, Vertigo)이 가장 대표적인 증상이다.
세상이, 그리고 내 앞의 사물이 빙빙 도는 느낌. 주로 내이(內耳) 쪽 이상으로 생기는데, 이석증, 메니에르병(Ménière's disease), 전정신경염(前庭神經炎, Vestibular Neuritis) 등이 여기에 속한다.
뇌로 가는 혈류가 부족할 때 생기는 '중추성' 어지럼증도 있다. 서 있거나 걸을 때 중심을 못 잡고 균형을 잃는 경우다. 심장 질환, 저혈압, 빈혈, 저혈당 등이 원인이 돼서 생긴다. 소뇌 문제 때문으로도 생긴다.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 질환의 핵심 증상 중의 하나다.
여기에 공황장애, 불안장애, 우울증 등 심리적 원인에 의해 생긴 '심인성' 어지럼증도 있다. "붕 뜬 느낌"이나 "머리 안이 도는 느낌" 같이 애매한 표현을 할 때가 많다.

어지럼증 진단은 귀 내부의 전정기관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진=부산 춘해병원
부산 춘해병원 어지럼증센터 이영선 센터장(이비인후과)은 "어지럼증은 하나의 원인 때문일 수도있지만, 여러 원인이 겹쳐서 복합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며 "다양한 원인과 증상이 겹치기 때문에, 단순 검사로는 진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했다.
노화와 어지럼증: 단순 퇴행일까, 위험 신호일까?
특히 노화는 어지럼증의 주요한 배경이다. 나이가 들수록 전정기관의 기능이 저하되고, 혈압 조절 능력이 떨어지며, 복용하는 약물도 늘어난다. 마치 오래된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이 자주 오류를 일으키듯, 신체의 균형 시스템도 점차 정확도를 잃는다.
홍 씨도 종합병원에서 제대로 진찰을 받아본 후에야 이석증 진단을 받았다.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의 부인 김혜경 여사에게도 나타났던 바로 그 병이다.
비타민D 결핍을 주요 원인의 하나로 꼽는다. 60세 이상에서 흔하지만 청소년, 젊은 층에서도 증가하는 추세다.
또 다른 문제는 어지럼증은 낙상과도 직&bull간접적으로 연결된다는 것. 낙상은 고령자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다.
게다가 반복되는 어지럼증은 환자에게 심리적 불안과 사회적 고립을 유발한다. 외출을 꺼리게 되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두려워진다. 이는 다시 노년기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든다.
'돌고 도는' 진료 현장 &ndash 통합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이유
여기에 더해 어지럼증 환자들이 겪는 가장 큰 애로는 '돌고 도는 진료'다. 이비인후과에서 이상이 없다고 하면 신경과로, 신경과에서 이상이 없다고 하면 심장내과로&hellip. 마치 미로 속을 걷는 기분이다.
이영선 센터장은 "오랫동안 원인을 못 찾은 환자에겐 여러 진료과가 유기적으로 협진하는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며 "최소한 이비인후과, 신경과, 심장내과 전문의 정도는 함께 진단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전정기능검사, 청력검사, 심전도, 혈액검사, CT·MRI 등 필요한 검사를 한 번에 진행하며 원인을 통합적으로 진단하는 것. 이럴 경우, 빠르면 1~2시간 내에도 원인을 파악하고 치료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여기에 최근엔 디지털 헬스케어의 발전으로, 웨어러블 기기를 통한 어지럼증 모니터링이나 전정재활 앱을 활용한 자가 치료도 가능하다. 예방을 위한 생활습관 개선, 예를 들어 ▲비타민 D 보충 ▲짠 음식 줄이기 ▲규칙적인 수면 등도 무척 중요한 전략이다.
어지럼증, 몸이 보내는 복합 경고음
어지럼증은 단순히 '느낌'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몸이 보내는 복합적인 경고음에 가깝다. 때로는 중대한 질환의 신호일 수도 있다. 어지럼증을 동반한 난청의 경우에는 청력을 완전히 잃을 수 있고, 기립성 저혈압이나 저혈당은 낙상 등 위기 상황을 몰고 온다.
특히 중추성 어지럼증은 뇌졸중(腦卒中, Stroke, 뇌출혈 또는 뇌경색) 같은 치명적인 질환과 연결된다. 자기 발로 걸어서 이비인후과를 내원한 환자 중 0.7%에서도 중추성 어지럼증이 발견됐다.
이영선 센터장은 "원인만 제대로 찾으면 어지럼증은 반드시 좋아질 수 있다"면서 "그 전제는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치료를 제때 받는 것"이라 했다.
즉, 어지럼증은 '그냥 지나가겠지' 하고 마냥 방치해둘 증상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갑자기 심하게 어지러울 때 ▲두통이나 의식 변화가 동반될 때 ▲팔다리 마비나 언어장애가 함께 나타날 때는 즉시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정확한 진단부터가 응급상황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도움말: 부산 춘해병원 어지럼증센터 이영선 센터장(이비인후과)

부산 춘해병원 어지럼증센터 이영선 센터장(이비인후과). 사진=춘해병원
 
윤성철 기자 syoon@kormedi.com